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뤽 고다르 (문단 편집) == 성격 == 주로 도서관과 박물관에서 지식을 습득했고 스스로를 박물관의 아이라고 이야기했다. [[파일:external/en-mobile-museeniepce.systalium.eu/Herschtritt-image-2.jpg|width=300%]] [[프랑수아 트뤼포]]와는 서로를 끔찍이 아끼던 절친이었으나, [[1970년대]]부터 갑자기 [[견원지간]]이 되어버렸다. 고다르가 [[마르크스주의]]로 변한 탓이라고 혹자들은 본다. 결정적인 계기는 [[아메리카의 밤]] 시사회였다고 하는데, 고다르는 영화를 역겹다고 까대자 트뤼포가 반발하면서 틀어졌고 이 이후론 완전히 절교해 죽을 때까지 서로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.[* 실제로 영화 세계도 누벨바그 이후론 상당히 극과 극으로 변했다. 고다르는 장 피에르 고랭과의 협연 등으로 정치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급진적이고 난해한 영화를 만들었다면 반대로 트뤼포는 대중적이고 고전 위주의 영화를 만들었다.] 이에 대해선 두가지 소문이 있는데 원래 영화에 대해 계획된 내용을 고다르와도 상의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계획과 이후 실제 찍기 시작한 후의 영화 내용이 너무 많이 달라진 것을 알게 된 고다르가 실망하고 분노해 출연하기로 한 것도 안 하고 비난했다는 설과, 고다르가 특별출연하기로 한 걸 트뤼포가 취소시켜 이에 분노했다는 설, 이 두가지다.[* 실제로 이 영화는 [[누벨바그]] 추종자들 사이에서 누벨바그 고유의 정신을 버린 영화로 평가받아 비난받기도 했다.] 서로 원수가 된 후엔, 언제 친구였냐는 듯 서로를 헐뜯었다. 트뤼포가 고다르의 자서전 제목으로 "'''한번 쓰레기는 영원한 쓰레기'''"를 추천해줬다고. 고다르는 나중에 트뤼포가 [[뇌종양]]으로 죽어가자, '''"그렇게 나쁜 책을 많이 읽어서 그래."'''라고 깠다.[* 그래도 한편으로는 "우리(누벨바그 감독들)는 이제 우리의 가장 믿음직스러웠던 보호막을 잃어버렸다."는 말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.] [[로만 폴란스키]]가 고다르를 누르고 각색권을 차지한 적이 있는데,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흘러 [[찰스 맨슨]] 사건이 일어나자 '''"세상에…거봐…나한테서 각색권을 빼앗아가더니만…"'''이라 말했다. 이러다보니 인간관계에 트러블이 많았고 프랑스 언론하고도 그렇게 사이가 좋진 않았다. 1974년부터 파리를 떠나 [[그르노블]]을 거쳐 스위스로 이주한 것도 이 때문일듯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